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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중장년 디지털 문제 해결: 부모님께 스마트폰을 알려주다 처음으로 설명을 멈춘 날

📑 목차

    부모님께 스마트폰을 알려주다 처음으로 설명을 멈춘 날

    부모님께 스마트폰을 알려주는 일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수년간 스마트폰을 써왔고, 앱 설치나 설정 변경, 간단한 문제 해결쯤은 고민 없이 해오던 사람이었다.

    부모님·중장년 디지털 문제 해결: 부모님께 스마트폰을 알려주다 처음으로 설명을 멈춘 날


    그래서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새로 바꾸셨을 때도, 나는 그저 “조금만 알려드리면 금방 익숙해지시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생각 자체가, 그날 설명을 멈추게 된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부모님이 처음 스마트폰을 들고 내게 오셨을 때, 나는 이미 머릿속에 설명 순서를 정해두고 있었다.
    홈 화면은 이렇게 생겼고, 전화는 여기서 받고, 문자는 여기로 들어오고, 실수로 눌러도 이 버튼만 누르면 다시 돌아온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흐름이었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부분까지도 나는 빠르게 넘어갔다.
    ‘이 정도는 굳이 말 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설명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날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부모님이 “이게 왜 이렇게 된 거냐”라고 물으셨고, 나는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 화면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면서, 내가 평소 쓰던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시길래, 나는 이해하셨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끄덕임은 이해가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에 가까웠다.

     

    설명이 몇 분쯤 이어졌을 때였다.
    부모님은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나를 보고 계셨다.
    그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나는 그제야 느꼈다.
    무언가를 열심히 따라오려다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 때 짓는 표정,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말을 멈췄다.
    설명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던 말들이, 부모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설명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전달은 전혀 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꺼내셨다.
    “이거… 잘못 누르면 고장 나는 거 아니지?”
    그 말은 질문이라기보다 걱정에 가까웠다.
    나는 괜찮다고, 그런 걸로 고장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지만, 그 말이 부모님을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괜찮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었고, 부모님이 느끼는 불안은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장면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
    왜 나는 그렇게 쉽게 설명을 멈출 수밖에 없었을까.
    왜 그날의 설명은 부모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내가 설명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나는 설명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그 설명은 ‘실수하지 않기 위한 시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버튼 하나를 잘못 누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듣는 설명은
    아무리 친절해 보여도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부모님께 스마트폰을 설명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기능을 한꺼번에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설명보다 먼저, 부모님이 무엇을 가장 불안해하시는지를 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예전에는 “이 버튼 누르면 돼요”라고 말하던 것을,
    이제는 “이거 눌러도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기능 자체보다 ‘되돌릴 수 있음’을 먼저 보여주려고 했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대신, 실수해도 괜찮다는 상황을 직접 만들어 보여주려고 했다.

    어느 날은 일부러 잘못된 버튼을 눌러 보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놀라시기 전에, 다시 원래 화면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드렸다.
    그제야 부모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부모님이 두려워하셨던 건 스마트폰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설명을 더 천천히 하게 됐다.
    말의 속도를 줄였고, 한 번에 하나만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명을 끝내는 기준을 ‘내가 다 말했다’가 아니라
    ‘부모님이 직접 한 번 해보셨다’로 바꿨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기도 했고, 이미 설명했던 부분을 다시 설명해야 할 때도 많았다.
    가끔은 속으로 ‘아까 말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날 설명을 멈췄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멈칫함이, 나를 다시 붙잡아 주었다.

     

    부모님께 스마트폰을 알려주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며칠, 몇 주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씩, 아주 천천히 익숙해지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은 스마트폰 사용법이 아니라, 설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인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나는 익숙함의 기준에서 설명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불안의 기준에서 듣고 있었다.
    그 간극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계속 설명만 늘어놓았으니, 전달이 될 리가 없었다.
    그날 설명을 멈췄던 것은,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그 간극을 마주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블로그에 이런 경험을 기록하기로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부모님 디지털 문제를 해결하면서 겪었던 일들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 문제에 더 가까웠다.


    나는 이 기록들을 통해, 나 스스로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설명이 상대에게 어떻게 느껴졌을지를 계속 돌아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부모님께 스마트폰을 알려주다 멈추게 되는 순간은 또 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멈춤이 실패가 아니라, 다시 생각해 볼 기회라는 걸 안다.
    그날 처음으로 설명을 멈췄던 경험은, 나에게 그런 기준을 만들어주었다.

    이 글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도 단순하다.
    완벽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명이 통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결국, 가장 중요한 배움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